771-phys-물리학

771-phys-0001-물리학의 출발기초- 천지 창조의 기초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0. 5. 7. 11:27

771-phys-0001-물리학의 출발기초- 천지 창조의 기초

물리학 자연과학 등의 대상은 현상적 내용에 국한하게 된다. 결국 현상적 내용이 물리학의 연구대상이자 출발기초가 된다.

물리학은 이로써 철학 형이상학 등과 학문 연구 분야가 달라진다.

물리학자의 판단은 판단자의 정신과 무관한 객관적인 판단인가?

물리학 연구자들은 객관적인 물질 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본래 물질 현상이란, 이를 관찰하는 주체의 정신작용을 기초로 이를 통해 파악된 정신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파악하는 주체의 정신내용과 분리된 물질현상을 얻을 수는 없다. 아무리 배제하려고 해도 이들 내용은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학 연구에 임하는 입장에서는 추론을 통해 되도록 각 주체간의 인식 내용의 차이를 문제 삼지 않고 가급적 객관적인 연구 대상을 확립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이 진리의 내용을 확립하고 그렇게 확립한 진리의 내용이 보편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현상세계에 타당하고 옳은 진리의 내용이라고 믿고자 한다.

물리학자의 사실판단은 판단주체와 관련 없이 객관적으로 참을 세울 수 있는 판단인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구별 .

물리학자는 많은 판단을 한다.

그런데 우선 --_이다는 식의 판단에는 성격이 다른 두 종류가 있다고 보통 말한다.

예를 들어 자연 과학자들이 물은 액체다’, ‘물은 0도에서 언다는 등의 판단과 같이, 어떤 현상이 있는 그대로 --이다라고 밝히는 판단은 사실판단이라고 하게 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저 꽃은 아름답다. 좋다는 등의 판단처럼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 가치에 관한 판단은 앞의 사실판단과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보게 된다.

이들 가치에 관한 판단은 개별 주체마다 서로 다르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누구는 백합을 아름답다고 하는데 누구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누구의 판단을 정확히 옳고 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런 입장은 반대로 말하면, 사실판단은 각 주체와 관계없이 그것이 참이라는 것이 확립될 수 있는 판단이라는 의미다.

이런 입장에서 물리학자들이 하는 사실에 관한 판단은 사실판단에 들어간다. .

사실판단은 주체와 관련 없이 참인가?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행하는 사실판단은 모든 주체가 다 그것이 참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는 판단인가?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실에 관한 판단도 가치에 관한 판단과 그 질적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 정도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사실판단의 내용도 개별 주체마다 서로 같다고 단정하기 곤란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숨어 있다.

우선 다른 이가 얻은 감각내용을 다른 타인은 직접 얻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각 주체가 과연 같은 내용을 얻는가 아닌가는 역시 엄격히 검증해 단정하기 곤란하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수 주체가 같이 그런 내용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은 입증이 안 되는 주장임을 의미한다. 단지 언어를 통해 서로 엇비슷한 내용을 얻었겠구나 서로 추리할 뿐 그 정확한 내용 자체가 서로 교류가 안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간단히 실험해보자. 상대가 커피를 마신다. ‘좀 쓰지만 맛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말로 그가 얻은 그 맛을 내가 정확히 얻어 가지는가? 앞의 내용은 그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서도 감각내용이 완전히 서로 같지는 않다고 추리하게 되는 내용이 있다. 어떤 때 그러한가. 다행히 자기 자신 내부에서 감각기관이 여럿 있는 경우 그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시력이 다르다거나, 서로 달리 근시 난시라거나, 색약이라든가 등의 경우에는 이를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한 주체에서 각 감관이 얻는 내용이 다른데 어떤 것이 기준인가. 안과나 안경의사는 그가 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안경을 쓰게 하고 치료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어떤 내용이 정확히 객관적 표준의 내용인지 그런 것을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자신의 눈 사이에서도 사정이 그러한데, 이제 무엇을 얻는 지 확인할 길이 없는 다른 이와의 사이에서는 어떤 감각내용이 정확히 표준이고 기준인가. 과연 이들은 서로서로 엄격히 같을 것인가.

다른 여러 감각기관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왼쪽 귀와 오른 쪽 귀에서 얻는 내용이 엄격히 같은가. 손에서 얻는 촉감과 발에서 얻는 촉감이 엄격히 같은가..이제 더 나아가 가장 기본적으로 각 감각기관으로 얻은 서로 다른 내용은 정확이 어떤 것이 그 대상의 정확한 대표인가. 색깔인가, 소리인가. 냄새인가, 맛인가, 촉감인가, 이들은 서로 같은가.. 더 나아가 이들 각 내용은 모든 주체에게 같이 얻어진다고 할 것인가? 아닌가?

이제 고려하는 판단주체를인간을 넘어서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앞에서 본 좋다 나쁘다의 판단보다는 좀 사정이 덜하지만,

물리학자가 행하는엄격한 추리와 사실판단도 사실은 이런 성격을 갖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어떤가. 정확히 다른가..같은가를 판단하려면, 앞의 전제가 가능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사정 때문에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일단,감각내용을 기초로 행한 여러 판단의 내용들이 모든 주체에게 엄격히 같은 내용으로 참이다 라고 단정해확립하는 것 자체는 일단곤란함이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물론 앞의 사정을 잘 이해한다면 이는 거짓이다고단정함도 역시 힘듦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러나 어떤 쪽의 개연성이 더 많을 것인가?

어려움이 또 있다. 사실 감각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이를 좀 더 엄밀히 분석하면, 자신이 얻는 앞 순간과 뒷 순간의 감각내용마저도 그것이 서로 같은 지 다른 지를 상호 비교한다는 것 역시 곤란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감각내용을 직전의 내용을 그 직후 되살려내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눈을 감고서 그 직전에 본 감각내용을 그 직후의 순간에 본 내용과 동일하게 되살려 낼 수 있는가. 사실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 생각해보면, 되살려 낼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 뒤에 계속해서 물체를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순간 순간 얻는 내용이 같은지 다른지를 엄밀히 단정해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단 대상이 같은가 다른가는 모든 판단의 기초적 내용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꾸준히 실험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동일한 대상에 대해 행해진 결과여야 한다는 것은 그 실험에서 요구되는 기본이다.

한 번은 쥐에 대해 실험하고 한번은 토끼, 한번은 사람에 대해 실험한 다음 이 모든 내용을 쥐에 대한 실험결과라고 발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각 관찰 실험과정에서 판단 대상이 하나의 동일한 대상이라는 것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앞의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이판단을 하고자하는 것을 하나 정한 다음 그것을 감각하면서 살필 때그 전 후 과정에서 자신의 관찰대상이 과연 정확히 하나의동일성을 갖는 동일한 것인지, 아닌지 자체를 확보 검증할 수단이 없다. 결국 모든 판단의 가장 큰 기본 전제가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과학 관찰 실험과정에 이런 문제가 기본적으로 잠재해 있다.

이런 문제 제기 자체를대부분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다고 여기기 쉽다. 왜냐하면 대부분 상식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동일성을 판단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격히 살피면 이 상식적인 판단은 무언가를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앞에 제기한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이 문제를 발생하지 않는 것은 다음 사정 때문이다. 사실 현실의 대부분 실험대상은순간순간 형체를 달리해 폭발하는 폭발물이아니라 어느 정도 전후관계에서 계속 일정한 성질을 갖고유지된다. 그렇기에 그런 믿음이 크게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는 무시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이 문제 자체를지나치고 건너 뛰며문제자체를 문제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

그러면 우리가 행하는 동일성판단은 사실은 어떻게 행하고 있는 것인가?

■ 앞에 제기한 문제에도 불구하고우리는 현실에서 동일하다 다르다를 잘 판단한다. 그러면 결국 현상 내 내용을 이렇게 판단할 때 사용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가 이런 기초적 문제의 해결에 사용하는 수단은 무엇인가.

사실은 감각내용이 아니다. 이런 감각내용을 기초로 얻게 되는 관념(개념) 또는 그 관념(개념)을 가리키는 언어관념(언어적 관념<- 언어적 감각내용 등)등이다.

이는 감각내용이 갖는 제약과는 조금 제약이 덜하고 재생도 되고 재생된 내용들 사이에서 비교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도 여러 기본적인 한계와 문제가 있다.

왜 그런가. 기억 재생과정에서도 역시 앞의 문제가 감각내용과 관련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관념의 기억 재생 역시도 역시 유사한 문제를 갖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과거의 내용을 재생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무엇으로 그것을 엄격히 보증하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아무리 과거에 얻어진 관념과 동일한 내용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어떤 관념이든 그 관념을 떠올리는 그 현재 순간에 떠오르는 관념이라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대상:

여하튼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에서 주로 연구대상으로 삼게 되는 내용은 결국 우주나 천지(하늘땅) 세계의 부분이나 전체의 내용으로 인식되어 그 결과 판단자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용들이 연구대상이고, 그 내용, 구성요소, 전체와 부분, 그 각각의 상호관계, 인과관계 등이 주된 연구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현상적으로 생각하는 일체가 어떻게 어떤 차원 어떤 범주에서 제시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얻는 '현상적인' 일체 존재는 모두 6- 6- 6의 관계로 파악될 수 있다.

그것은 곧 생명의 감각 인식 작용이 이뤄질 때 갖는 6-6-6 의 관계와도 같다.

색깔 - - 안식

소리 - - 이식

냄새 - - 비식

- - 설식

- - 신식

- - 의식

이를 18심소연경이라고 합쳐 부르기도 한다.

* 그래서 우리가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다 꺼내 제시한다 하여도 결국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위 분류가 곧 현상의 내용을 연구할 때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 통상 물리학에서 점---공간 시간 등의 차원을 말하기도 하는데, 위 분류에 의하면, 색의 차원, 소리의 차원 등등으로 각기 다른 차원을 나누어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색- 의 차원에 있는 내용은 다른 차원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려 하면

그 내용이 있다 없다를 말하기 곤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저 새소리는 무슨 색인가라고 물을 때 답하기 곤란하게 되는 것과 같다.

기본적으로 이 각각의 내용에 일으키기 쉬운 기본적인 착각이 있다.

자칫 잘못하여 때로는 자신이 '어떤 색'을 손으로 만진다거나, 또는 '어떤 색'을 손으로 두드리니 '그 색'에서 소리가 난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그것이 착각을 기초로 한 잘못된 판단임을 모른다.

따라서 이런 판단을 기초로 진행된 이후의 학문의 연구결과가 또 다시 착각된 내용을 만들어 내게 된다.

앞의 내용들은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에게 색 감각내용을 주는 실재의 '그 무엇',, 우리에게 색 감각을 주고 또 한편 어떤 촉감 내용을 준다고 말해야 비교적 정확하다.

그러나 이 앞의 표현에서 색을 주는 '그 무엇'이 정말 무엇인가는 물리학의 연구대상을 넘어서게 된다.

이상의 문제는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물리학의 연구대상을 확립하고 이후 각각의 판단을 행하고자 할 때는 가장 기초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출발하면 오류가 발생하고 쌓이게 된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물리학은 진리를 엄격히 추구하는 학문이다. 물리학이 진리를 연구하지 않고 오류나 착각에 기초하여 그 위에 오직 추론만으로 자신이 진리라고 믿고자 하는 거짓내용들을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학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엄격히 객관적이고 진리가 되는 내용을 굳건히 확립하고자 노력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진리 자체를 찾고 연구하는 경우에서는 앞에 제기된 여러 문제를 굳이 구분하여 따로 따로 문제 삼을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결국 같이 결합되어 있고 같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문의 분야를 나누어 전문적으로 연구에 임하고자 하기에 그것이 조금 구분 분리되는 것 뿐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위 두 문제가 갖는 의미와 문제 성격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한 다음에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 제기한 문제를 착각하거나, 혼동하는 가운데 연구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

끝으로 여담으로 현상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실험해 보일 수 있는 간단한 magic이 하나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그것은 -- 천지를 눈 깜작 할 새에 곧 없애고 창조하는 방법이다. --

어떻게?

문제에 답이 있다. 재미를 위해 답은 이 아래에 블라인드 처리

방법 : 눈을 깜작 거릴 때 자신의 눈에 보인 모든 세계의 모습이 없어지고 다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