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phys-물리학

[output]-물질과 감각정보의 전달체계

진리와 가치를 고루고루 2014. 1. 12. 14:07





● 물질과 감각정보의 전달체계 
- 소리의 연구 
- 정보의 전달 방식 





소리는 파동에 의해 정보를 얻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파동은 진동이 옆으로 전달되는 퍼져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그 진동이 전달되는 매개물질은 매질이라고 표현한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모양이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본다면, 
그 물결 모양이 파동이고 
그 물결모양을 전달하고 있는 물이 매질이다. 

매질이 파동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횡파와 종파가 있는데, 
이는 같은 매질이더라도 
어떤 경우는 횡파형태로 
어떤 경우는 종파형태로 
파동을 전달함을 의미한다. 

소리의 파동은 종파라고 한다. 

파동이 전달되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는 방법으로는 

용수철을 가지고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용수철의 한쪽을 위아래로 튕기면 
그 움직임이 옆으로 전달된다. 

또 용수철의 한쪽을 잡아 당겼다고 놓아도 
그 움직임이 옆으로 전달된다. 

이 두 경우에서 움직임이 전달되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그 움직임이 전달되는 모양이 위아래로 출렁되는 형태로 
전달되는 것을 
횡파라고 하고 

그 모양이 용수철의 간격이 서로 좁혀졌다 넓혀졌다 하는 형태로 
전달되는 것을 
종파라고 한다. 

여하튼 소리는 이 가운데 
종파의 형태로 
파동이 전달되는 것이다. 


소리의 높낮이는 진동수에 의존하고 
소리가 갖는 음색은 파동의 모양에 의존하고 
소리의 크기는 진폭의 크기에 의존한다. 


○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감각 정보를 얻게 되는 과정에 
어떤 방식이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왼쪽의 그 무엇을 A라고 일단 하자. 
그리고 오른쪽의 그 무엇( 자기자신)을 B라고 하자. 
A의 어떤 내용을 B 에게 전달시키는 방안에 무엇무엇들이 있을 것인가. 


- 우선은 A가 직접 전부 B에게 가서 그A의 내용을 전달시키는 방식이 있다. 
A가 전부 간 다음   A가 각 부분으로 나뉘어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있다. 
- A가 전부 가지 않고 A의 일부가 가서 전달하는 방식이 있다. 
- A가 가지 않고 A의 중간의 다른 것에 전달시키고 또 그것은 다음 옆에 전달시키고 하여 B에게 전달시키는 방식이 있다. 
- A와 B 사이를 오가는 다른 것이 내용을 전달 받아 다른 것에 전달해주는 방식이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감각은 이런 과정들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결국 그런 방식들로 
외부의 정보를 자신의 내부에 전달시키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서로 관계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A와 그 B는 
각기 무엇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A라는 존재가 있기는 있다고 할 때 
그 A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 주체 B는  A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더 나아가 그 주체 B를 전제로 하지 않고 
A가 독자적으로 실재하게 되는 내용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얻는 정보는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으로 얻는 내용으로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현상적 내용이다. 

그리고 우리가 물질로 이해하는 모든 내용들이 바로 이런 것이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내부에서 다시 관념을 얻는데 
이 관념으로 
이처럼 감각으로 얻는 감각정보에 대해 
관념을 갖게 된다. 

이것은 모습이고 
이것은 소리고 
이것은 냄새고 
이것은 맛이고 
이것은 촉감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관념 처리 단계 이후에서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그것이 감각되어 들어오기는 하였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다라는 관념적 규정이 없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물질과 정신을 구분할 때 
잠재적으로 감각을 통해 기본적으로 받아들인 내용을 물질적 내용이라고 이해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관념활동을 하여 
관념적 판단 등을 하는 내용을 정신이라고 구별하기 쉽다. 

그래서 빛이나 소리 색깔 등이 물리학에서 취급하는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는 한 주체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감각내용이고 관념 내용 들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감각내용을 전달시켜준 
원래 실재하는 그 무엇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의 
객관적 실재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는데 

이 실재하는 내용을 직접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정보를 위와 같은 
과정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그 관계를 떠나면 
그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비유를 통해 이해해보자. 

호수가 있는데 호수에 돌을 던지면서 
파장이 일어나 그 파장이 점차 퍼져 물가에 다다르는 과정을 
지켜본다고 하자. 

이제 그것이 물가에 다다러서 
물가에도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고 가정하자. 

이것이 우리가 어떤 외부로부터 소리를 듣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귀의 고막이 앞의 비유에서 
호수의 물가와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제 호수의 물가는 자신에 다다른 어떤 변화(파동)을 
받아들여 다시 또 다른 변화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그것이 귀 안의 청소골, 반고리관, 달팽이관, 청신경
등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이런 변화과정을 거쳐 
도달한 변화를 얻게 되는데 

그것이 곧 소리라는 감각 정보인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바탕하여 다시 변화를 일으킨 것이 
'그것은 소리다' 라는 관념이나 판단 작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또 파동으로 이해하면 
뇌파라고 이해할 만하다. 

여하튼 
다시 앞의 호숫가로 가서 
호수에 던진 돌을 바라보면서 
다시 물가에 이르는 파동을 지켜보자. 

돌과 파동은 도대체 어떤 관계인가. 
서로 같은가 다른가 등을 따져 보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아주 다르다고도 하기 힘들고 
같다고 하기도 힘들다. 

이 파동이 그 돌과 호수안에 본래 있었다고 하기도 힘들고 
없었다고도 하기 힘들다. 

우리가 소리를 받아들이고 난 이후에는 
그 소리가 외부의 내용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이해하기 쉽다. 

즉 내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면 
그 소리에 해당하는 어떤 객관적 내용이 
그렇게 실재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것은 같은 소리를 듣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나 
다른 형태로 관계를 맺는 다른 동물 곤충 식물 등에게는 
동의를 받을 수 없는 내용이 된다. 

그런 입장의 주체로부터는 
자신이 듣고 말하는 소리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것인가?
소리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질문을 다시 받을 만하다. 

물리학에서 논의하는 소리의 정체에 대해  
1차적으로 확인해야 할 내용은 
이 소리가 우리 정신 외부에 실재하는 어떤 내용인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하게 추리되는 변화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우리의 정신 안에 들어온 변화내용[감각내용]의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즉 물질이라고 이해하는 그 모든 현상적 내용은 
사실은 우리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정신안의 내용물로서 
감각 내용들이라는 사실이다. 

이 감각내용을 놓고 
이러이러한 감각내용을 얻었으면 
그와 동일한 내용이 자신의 정신 외부에 
그대로 실재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는 
앞에서 본 것처럼 

즉 호숫가에 닿은 물결 파동과 
그 파동을 처음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호숫가에 던져진 돌과 호숫물의 관계처럼 
조금은 비슷하고 
조금은 동떨어진 그런 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마치 우리에게 파란 빛(색)을 느끼게 해주는 
그 어떤 실재하는 무엇은 
그것이 파란 색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게 파란 색이란 빛깔을 전달시켜 준 
즉 파란 빛의 파장을 반사시켜 준 
그 무엇일 뿐 
그것 자체가 파란 빛의 파장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렇다고 자신이 얻은 감각 정보가 
그 실재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곤란하다. 

그러나 또 앞과 같은 사유로 
자신이 얻은 감각정보가 
그 감각정보 그대로 외부의 실재 내용 그 자체라고 
이해하고 그렇게 단정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왼손과 오른손을 부딪히면 소리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는데 

이 소리는 왼손 안에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오른 손 안에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둘 다에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둘 다에 없었던 것인가

이런 문제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손과 손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을 
경험하지만, 
위 질문에는 단정적으로 답하기 곤란함을 
알게 된다. 

전혀 관계없는 것도 아니지만, 
소리가 왼손 그 자체라거나 
또는 오른 손 그 자체라거나, 
손과 동일하다고 할 수 도 없고 
또 이와 전혀 관계없이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이해하는 이 관계는 
사실은 둘 다 얻어 놓은 감각내용을 
바탕으로 한 추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눈으로 손의 모습을 본 것이고 
귀로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런데 정신 안에 들어온 손의 모습이 
소리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떤 실재를 상대하여 
그 실재를 바탕으로 
눈으로는 그런 모습을 본 것이고 
귀로는 그런 소리를 듣고 나서 

이 둘의 내용을 그렇게 관려지어 이해한 것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눈으로 본 어떤 내용 그 자체가  
소리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눈으로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것을 얻게 한 실재의 어떤 무엇이 
눈을 통해서는 그런 모습을 얻게 해준 것이고 
또 한편으로 귀를 통해서는 그런 소리를 얻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그 실재 자체는 
직접 얻을 수 없다는 공통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물리학과 실재에 대한 논의는 
이런 기본적인 관계성을 이해하고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는 두 손을 부딪히면 소리가 난다는 것은 
올바른 원인-결과의 관계를 진술한 명제인 처럼 생각되지만, 
이 둘은 서로 작용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tv 모니터에서 
색상 버튼을 눌러 색상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스피커의 소리가 변화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번개와 천둥의 관계도 사정이 같다. 

사람들은 
천둥 소리는 번개[빛] 때문에 일어난다고 
원인 - 결과를 관련짓는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번개[빛]를 일으키고 천둥[소리]를 일으킨 실재의 그 무엇이 
눈으로는 번개를 보게 해준 것이고 
귀로는 천둥소리를 듣게 해준 것이다. 

천둥이 번개를 일으켰다고 이해하면 
조금 부적절함을 바로 알아채게 될 것이다. 

이 둘은 그렇다고 전혀 관계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둘의 관계를 또 서로 작용하고 영향미치는 그 무엇으로 이해한다면 
인과관계의 이해에 기본적으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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