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념과 다른 의미차원의 관계성 문제
[요약내용] 하나의 언어가 가리킬 수 있는 의미의 차원에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있다. 언어내용%, 관념내용@, 감각내용!, 실체적내용$, 실재내용#, 등이다. 하나의 의미차원에서 적용되는 내용은 다른 의미차원에서 반드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각각의 차원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서로 내용이 분리되는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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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하나의 언어가 가리킬 수 있는 의미의 차원에 매우 다양한 내용들이 있음을 보았다.
사람이란 단어를 가지고 예를 들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두 글자다. (언어내용으로서 사람%)
'사람'은 생명이다. (관념내용으로서 사람@)
저 '사람'은 아름답다. (감각내용으로서 사람!)
'사람'은 실체적 내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적 내용으로서 사람$)
'사람'은 실재로는 얻을 수 없고 공하다. (실재내용으로서 사람#)
우리가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차원은 대략 위의 예처럼 다양하다.
또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고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의 차원도 위처럼 다양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학을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사람'을 영어로는 무엇이라 하는지가 궁금할 수 있다.
또 관념적인 현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입장이라면, 사람이란 개념이 갖는 성질이나 외연 그리고 다른 개념과는 어떤 상호 포섭 관계에 있는가가 궁금할 수도 있다.
또 감각적인 현상에 대해서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하나의 현상이 갖는 다양한 성질, 전체의 구조, 다른 부분과 관계 그리고 하나의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과 그 결과가 궁금할 수 있다.
또 어떤 현상에 대해서 그 실체나 실재적 내용을 찾는 입장에서는 영원불변한 실체가 정말 존재하는가 또는 실재로는 그 내용들이 무엇인가 등이 궁금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가운데 논의하고나 찾고자 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의미의 구별이 필요하다.
물론 이 글에서는 각각의 의미차원을 구분하기 위해
'사람' 이란 단어가 언어내용으로서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이라 표시하고,
관념내용으로서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감각내용으로서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실체적 내용으로서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그리고 실재내용으로서 사람을 나타낼 때는 사람# 이런 식으로 별도 기호를 붙여 구별했지만,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는 이런 구별 방법은 사용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방안으로 의미를 구별해 사용하는 것이 언어생활에 불편하기도 하고,
또 현실생활에서는 이런 구분이 늘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언어는 원래 약간 의미가 불명확한 가운데, 상호 의사 교환에 적절히 이용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며,
엄밀하게 모든 현상이나 내용에 대해 1대 1 정확하게 대응되는 정확하고 엄밀한 언어를 만들어 사용할 방안은 본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논의 주제가 위 여러 사항을 구분하면서, 논의할 필요가 있는 주제인 경우에는
언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 때문에 혼동을 많이 초래한다.
그래서 부득이 위와 같은 구별표시방안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 한편, 논리학이나 추론에서 위 다양한 의미차원들이 갖는 의미는 다음이다.
○ 우선, 하나의 의미차원에서 적용되는 내용은 다른 의미차원에서 반드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 예를 들어 사람이란 글자는 두글자로 되어 있다. => 그렇다고 사람에 대해 갖는 관념이 두 글자나 두 요소로 구성된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관념영역에서 사람이란 관념에 대한 생각은그 다음 동물, 인간, 식물 등의 관념을 연상해 불러 일으킬 수 있다. => 그렇다고 감각내용의 차원에서, 사람의 모습이 동물이나 인간 식물 등을 발생시켜 내는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물을 얼리면, 얼음이 되는 관계가 경험된다. => 그렇다고 관념영역에서도 물의 관념에 대해 온도를 낮추면 관념적으로 얼음으로 변화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판단을 갖게되는 것뿐이다.
한편 현상 세계에서 일정한 내용이 파악된다고 하여, => 그렇다고 그 내용이 그대로 실재내용으로도 성립한다거나, 그에 해당한 영원불변한 실체도 다 각기 따로 성립한다고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이들 각각의 의미차원은 각각의 의미차원 안에서 그에 해당한 내용들을 별개로 찾고 관계를 연구해야 할 내용이 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이들 의미차원 사이의 관계를 혼동하게 된다.
○ 특히 관념차원 내용과 감각내용(~현실경험세계)차원의 내용을 서로 혼동하거나,
현상적 내용(감각내용+관념내용)과 실재내용 또는 실체내용의 관계를 서로 혼동하는 경우가 매우 잦다.
▼ 예를 들어 시속 40km 로 2시간 계속 달리면 몇 km 를 달릴 수 있는가와 같은 수학이나 물리문제들도 같은 성격을 갖는다.
관념적으로 수학적으로 연역해 추리하면 80km를 달린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반드시 그와 같이 성립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이가 달린다면, 중간에 길이 막혀 못 갈 수도 있고, 가다가 그만 쉴 수도 있고 그런 사정이 있게 된다.
단순한 수학적 관념영역에서 추리내용과 현실세계에서 감각으로 파악하는 내용간에는 그런 기본적인 괴리가 발생함을 의미한다.
▼ 또 나무를 불로 태우면 연기가 난다는 관계도 사정이 같다.
이 내용을 경험으로 관찰하기 이전에,
단순히 나무라는 관념이나 불이라는 관념만으로 그런 관계를 선험적으로 관념에만 의존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를 불로 태우면 연기가 나는 관계는 현상이 그렇게 일어남을 감각하고 관찰하기때문에 그런 내용을 관념으로 그와 같이 정리하고 언어로 보고하는 것이다.
이는 관념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먼저 관련시키고 그 내용을 거꾸로 감각내용!에 적용시키는 관계가 아님을 의미한다.
▼ 실재내용도 마찬가지의 사정이 있다.
우리에게 빨간 색으로 보이는 물체는 우리가 그런 빨간 색을 감각함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빨간 물체를 그렇게 보고 얻는다고, 그에 해당한그런 물체가 반드시 실재하고, 또 그 물체가 실재로 빨간 색이라고단정을 반드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물론 우리는 빨간 물체!를 보면 그에 해당한 빨간 물체#도 객관적으로 실재#하리라 추리한다.
만일 자신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빨간 물체#가 없다면, 왜 우리가 눈을 뜨면 빨간 물체의 모습!을 얻게 될 것인가. 그럴리는없을 것이다라고 추리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가 일정한 감각내용! 또는 관념내용@을 얻으면 그에 해당하는 실재내용#도 당연히 존재하고 그 내용#도 또 그와 같으리라 추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또 다른 추리들은 그와 같은 추리가 옳지 않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된다.
우선 우리가 빨간 색의 물체!를 보면그에 상응하여실재하는 빨간 물체#도 있다고 추리하지만,
그러나 이 물체를 귀나 코로 대하면, 빨간색이라는 존재는 얻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없음(無)이다.
또 이 내용을 반대로 말하면 어떤 감관으로 대할 때'없음(無)'으로판단되는 대상은다른 감관으로 대하면 있음(有)이라고 판단해야 할 경우가 있게 된다.
그래서 있고 없음의 문제가 각각의 감관에 따라 다른 평가를 오락가락 받게 된다.
즉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있는' 것이 다른 것을 기준으로 하면 '없다'고 해야 하고,
'없다'고 하는 것은 '있다'고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색이라는 존재는 귀의 영역에서는 일체 없음이다.
반대로 소리라는 존재는 눈의 영역에서는 일체 없음이다.
냄새, 맛, 촉감도 각기 사정이 같다.
이런 관계로
만일 하나의 감관만이라도 파악되면 '있다'고 추리해야 한다면, 있다고 해야 할 내용들이 감관의 상태나 종류에 따라 무수히 더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감관만으로도 파악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추리한다면, 없다고 해야 할 내용이 고려하는 감관의 상태나 종류를더함에 따라 또 많아지게 된다.
한편 어떤내용을 얻고 그래서그것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그 내용은 감관의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변화함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냥 눈으로 대해 얻은 색을 이제 다른 색안경을 끼고 대하면 그것은 다른 색으로 바뀌어 얻어진다.
그래서 자신이 얻은 감각내용은 그 대상에 실재 빨간 색이 실재#하고 있어서 그런 내용을 얻었다기 보다는 우리의 감관의 상태와 관련하여 영향받고 서로 화합하여 내용이 바뀌어 얻어지는 것에불과한 것이라고 추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추리는 그런 변화를 일으킨 원 실재내용# 자체가 우리가 얻은 감각내용! 그 자체와 동일한 내용이라고 추리할 수 없게 만든다.
또 오늘날 추리는, 우리가 빨간 색의 물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빨간 파장만을 우리의 눈에 반사하고 신경변화를 일으키는어떤 물체라고 추리한다.
그래서 그 물체 자체가 빨간 파장이라거나 빨간 파장들로 이루어진 어떤 물체라고 단정하기 곤란하다.
이런 여러 사정으로, 우리가 얻은 현상적 내용(감각내용!, 관념내용@)이 있으면, 곧바로 그에 상응한 실재내용#도 실재한다거나, 더 나아가그 실재내용#도 현상적으로 얻는 감각내용!이나 관념내용@ 그대로일치한다고 주장하기 곤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추리의 가장 근본적 약점은 다음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실재내용#을 직접 얻어올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주체는 오직 감각기관이나 인식기관을 통해서 그것과 관계하여 감각내용!이나 관념내용@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떠나, 실재내용# 자체를 직접 얻어올 수는 없다.
따라서 현상내용!@이 실재내용#과 일치한다거나, 이 둘 사이에 어떤 비례관계가 존재한다는 등의 추리는
그 추리내용을 입증하거나 그 추리의 근거로 사용할 하나의 내용 조차도 세우거나 얻을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얻어온 실재내용이 단 하나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불교에서는, 그런 실재내용에 대해서는 그것은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있다거나 없다거나 무엇과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나라거나 여럿이라거나, 등등으로 분별해 말할 수 없고,
따라서 이분법적인 모든 분별을 떠나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의 실재내용은 '공하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공하다라는 표현은 이분법적 분별을 떠나고[不二]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표현하는 언어가 된다. 비록 찾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지만, 그런 실재내용은 추리되고 찾게 되기에 일단 어떤 내용을 갖지 않고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단어로 앞과 같은상태를가리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하지만,일반인이나 철학자들에게는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적 내용을 우리에게 주는 대상과 주체의 실재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문제는늘 의문과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 논의는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객관적 대상 자체의 내용을 추구하는많은 경우 단순한 관념 영역에서의 내용을 토대로 사변적인 추리가 행해지고 그것이 객관적 실재의 내용이라고 주장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게 된다.
다만 여기서는, 실재내용#과 현상내용!@의 관계는이렇게 원칙되는 분리되게 되는 사정이 있음을말하게 된다.
현실에서 실재내용#을 직접 얻어서 연구할 수 없고,
그래서 단지 현상내용(즉 얻어 놓은 감각내용! 관념내용@)을 가지고 이것을 바탕으로 실재내용#에 관하여 추리하고 연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앞에서 이미 본 것처럼 의미차원이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내용을 다른 의미차원에 곧바로 적용할 근거를 확립하기는 곤란하다.
그것은마치 언어내용%에서 성립하는 어떤 내용을 관념내용@이나 감각내용!에 곧바로 적용하는 것처럼 오류를 발생시킨다.그리고 이런 사정을 미리 밝혀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 한편 이런 사정은 실체의 존부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도 사정이 같다.
실체가 존재하는가. 또 존재한다면 그내용이 무엇인가의 문제도 기본적으로 현상적 내용만 얻는 상태에서는 근본적으로 앞과 비슷한 한계가 있게 된다.
다만 이 실체의 존부문제는 우리가 찾는 내용으로서 '실체'라는 관념이 우리의 관념영역에서 관념적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라는 데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모든 관념은 그것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던 없던, 관념영역에서 문제삼는 순간부터 관념영역에서 관념적인 내용으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쉽게 말해 존재하지 않는 도깨비를 찾는다해도 그렇게 찾는 순간도깨비라는 관념 자체만은 마음안에 있다는 사정을 단순히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찾는 존재의 의미는 그런 관념영역안의 관념내용이 아니다.
찾는 문제는 그런 관념내용에 대응한 -> 다른 내용이 정말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단지 그런 내용을 실제로찾을 때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념내용인 것뿐이다.
그런데 실체$라는 관념은 현상과 대조적인 성질로서, 영원하고 고정된 어떤 내용일 것을 관념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상이 일시적이고 변화하기에, 그것을 거짓된 내용으로 판단하고, 그런 내용 대신 어떤 영원하고 고정된내용을 찾는 것이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찾고자 하는 실체$의 의미안에는 영원성 불변성 고정성 등의 성질이포함되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런 관념적인 내용을 기초로 연역 추리하고, 이 내용을 현실 경험과 관계맺어 판단하면,
그런 실체$가 만일 존재한다면 반대로 우리가 대하는 현상은 얻을 수 없다는 관계를 끌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우리가 찾는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결론은실제 경험관찰이 아닌, 관념안에서 행하는 연역적인 추론 체계의필연성에 주로 의존해 끌어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는 즉, 현실 경험영역에서 모든 시간 공간대에 걸쳐 모든 세상의 존재에 대하여 관찰을 통해 우리가 찾는 '영원불변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귀납적으로 성립시키는 것은 아님을의미한다.
그러나 여하튼 실체의 존부 문제도 그런 연구 주제에서 종국적으로 찾는 내용은 어떤 내용이 관념 영역에서의 존재하는가 않는가의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관념영역에서 그런 관념이 있고 주장된다고 하여 곧바로 그 '관념에 해당한 내용' 또한 그와 같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끌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대략 살펴본 것처럼, 앞에서 살펴본 다양한 의미의 차원은
실제로 연구를 하는 주제와 찾고자 하는 내용의 차원과 관련하여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각각의 차원의 내용은 원칙적으로 서로 내용이 분리되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그내용을 위와 같이 자세히 살펴 본 것이다.
○ 한편, 이런 문제는 우리가 주로 관념내용(개념)을 가지고 추론을 할 때,
그 추론 내용이 주로 어떤 관계로 다른 의미차원의 내용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된다.
이미 앞에서 논리추론에서 사용하는 개념이 참된 개념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말했다.
그런데이 문제는 바로 하나의 개념이 다른 의미차원에서 어떤 상태로 관련될 때 그 개념이 참된 개념이 되는가의 문제다.
또어떤 명제나 결론의 참의 문제도 사정이 같다.
하나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그 명제의 내용이 단순히 형식적으로 관념영역 차원에서 전제명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추론할 때 필연적으로 어떤 결론 내용이 옳은 내용으로 이끌어지게 된다는의미로 참이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4에 4를 더하면 8이된다는 수학적인 명제는 대부분, 기본적인 수학적 공리나 전제를 모두받아들인 상태에서 연역추론을 통해 참인 명제로끌어내지는 결론들이다.
그러나 하나의 명제를 참이라고 할 때, 그 참이 다른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즉 명제를 구성하는 각 개념, 그리고 명제를 구성하는 각 개념과 개념들의 관계가, 문제삼는 또 다른 의미차원에서도 그와 같은 내용 그와 같은 관계로 성립한다는 의미에서 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물이 얼으면 얼음이 된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다른 명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 전제에서 그런 결론이 필연적으로 끌어내지게 된다는의미로 참이라고하는경우보다는,
보통은 그와 같은 내용이 현실경험, 감각내용!에서도 대응되어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참이라고 일반적으로말하는 것이다.
논리추론에서는 이런 성격이 다른 참의 의미가 모두 사용될 수 있다.
즉, 앞에서 본 것처럼, 단순히 관념영역에서 어떤 전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떠어떠한 내용도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어떤 관념영역에서의 내용과 대응한 감각내용!을 그와 같이 얻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참이라고 할 경우도 있다.
또 문제삼는 의미차원이 다르다면 또 그런 차원의 내용 ( 예를 들면 언어내용%, 실재내용#...등)에서 그와 같은 상응한 내용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참이라고 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서로 성격이 조금 다른 참의 의미에서 현실적으로의미를 더 갖는 경우는 뒤의 경우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순한 관념 영역에서의 문제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에 관련된 또 다른 의미 차원의 내용에 관심을 갖고 추론을 행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우주선의 운행궤도나 속도와 도착시간 장소의 관계를논리적으로 주장한다면,그것은 단순히수학적으로 그관계가 성립함을주장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실제로 그 우주선이 발사된 후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시각에 도착하는가 안하는가가 주된 관심인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제논이란 철학자가'날아가는화살은 정지한 것이다' '앞선 거북을 아킬레스는 추월하지 못한다'와 같이 주장할 때, 그런제논의 주장은 관념적인 추론영역에서는 그 전제에서 참으로 성립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그것을 궤변적 주장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그런 명제에 대응하는 현실 경험을 상응해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리학적으로는 이런 주장이 그런 전제에서는여전히 참인 결론으로 성립한다고주장할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은관념영역에서만의 추론은 아무리 관념영역에서 참으로 성립해도
그 내용이 다시 감각내용!들과 관련해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그 내용이 그 각각의 차원에서 일단 서로 분리된다는 사실을의미한다.
예를 들면 두부는 관념 영역에서 무한히 분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영역에서 실제로 칼이나 분할도구를 가지고 분할을 한다면 어떤가..
오늘날은 그런실험을실제로 한다면,원자폭발과 같은 경험을 하고 실험을 중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관념 영역에서는 하나의 벽돌 위에 다른 벽돌을 무한히 쌓아올릴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의 벽돌을 모두 하나로 쌓아 올리면 달에도 갈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감각내용의 차원에서 그런 사실을 경험하려고 하면,,어느 순간에서는 핵융합이 일어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몇 백미터 쌓지 못해 처참한 붕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공간을 무한히 분할한다. 시간을 무한히 분할한다..그런 관념적 내용의 주장도 사실은 사정이 같다.
그리고 그렇게 각 의미차원별로 내용이 서로 분리되고 이들이 서로 달리 성립하게 되는 사정은 이미 앞에서 본 것과 같다.
또 반대로 말하면 바로 이런 사정으로 인해 어떤 추론이 단순히 관념 영역안에서 뿐만 아니라, 감각내용!과 관련해서도 옳은 추론이 되게 하려면, 그 각각의 관념적 명제나 개념을감각내용!과 어떻게 관계시켜야 하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명제가 어떤 상태에 있을 때, 그 명제가 감각내용!과 관련해서도 '참된 명제'라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또 이는 하나의 개념과 관련해 보면, 하나의 개념은 감각내용!과 어떤 관계에 있을 때 그 개념을 '참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된다.
더 나아가 논의하는 주제가 감각내용!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내용# 실체내용$등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그런 추론에서도 앞과똑같은 형태의 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이런 문제는기본적으로 각 의미차원의 내용이 원칙적으로 분리된다는 사정 때문에 발생한다.
만일 하나의 의미차원에서 성립하는 내용은 반드시 다른 의미차원에서도 그와 같은 내용이 성립한다면,
이런 상호관계를 파악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다.
그런 경우는 사람%은 두글자이므로, 철수!도 두글자일 수 있다.
사람%이란 글자를고무지우개로 지우면, 전 인류가 사라질 수도 있다..이런 내용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또 그런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하려면, 각기 다른 의미차원에서의 내용들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그런관계가
그처럼 성립함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관념 영역에서 개념을 가지고 행하는 추론이, 감각내용!의 영역에서도 그와 같은 내용이 대응해 성립함을 주장하려면,
그래서 먼저 어떤 개념과 어떤 감각내용!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하는가를 먼저 확립할 필요가 있게 되는 것이다.
관념영역과 다른 의미차원들( 실재내용#, 언어내용%,,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 앞글에서는이런 문제를 단순히 관념 영역에서 개념을 요소로 추론을 하는 논리학이, 현실의 감각내용!과 관련해서도 참인 명제를 끌어내게 하기 위한 교두보를 건설하는 문제라고 제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간단히 '논리와 진리의 교두보 (또는 가교) 건설문제'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이 문제는 감각내용!과 관념@의 사실적 형성관계를 심리적인 측면에서 더 자세히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의 감각내용!을 기초로 수많은 관념@을 얻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사과!에 대해 사과@ 과일@ 물체@라는 관념도 얻을 수 있고 또는 이로부터 자유롭게 연상되는 다른 관념@도 있다. 예를 들어 배@ 포도@ 신맛@ 사과와 뉴턴@ 과학자@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관념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관념@ 가운데 특정한 감각내용!과 관련해 판단할 때,어떤 관념@은 옳거나 참된 관념@이라 하고또 반대로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정확이 무엇을 기준근거로 삼아 그런 판단이 가능한가를판단할 필요가 있게 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이 양자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논리학상에서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정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논의를 기초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관념@은 앞에서 본 것처럼 아무리 감각내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도그 내용이 완전히 서로 동일하거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사과를 보면서 바로 얻는 사과에 대한 관념@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과에 대한 감각내용!과의 관계에서만은 참된 내용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이런 관계에서그렇게 보는 기준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반대로 그런 사과!를 보고 배@라고 하면 참되지 않음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하는 근거는 또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피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기준이 바로, 관념영역에서의 추론내용을 감각내용!의 차원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가교, 교두보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논리학과 진리( 현상세계에서 감각내용!과 관련된 진리)의 교두보 건설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의 확보를 위해서는정신 영역 안에서 어떤 과정으로감각내용!과 관념@이 형성되고 이들이 서로 관계맺는가에 대해살필 필요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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