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내용] ● |
● 참된 개념과 명제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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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개념과 명제의 참
앞에서 살핀 참된 개념의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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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의 참의 문제와 관련된다.
사실 개념 하나만 놓고 이것이 참된가 거짓인가를 밝히는 것보다는
일정한 판단이나 명제를 놓고 참인가 거짓인가를 밝히는 경우가 더 많고 이 문제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사과란 개념 하나만을 놓고 이 개념이 참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보다는
사과는 과일이다.. 또는 과일이 아니다 라는 명제를 놓고 이 명제의 참 거짓을 따지는 경우가 더 많고
문제의 이해가 좀 더 쉽다는 의미다.
○ 명제의 참을 문제삼을 때,
명제가 어떤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을 참이라고 하는가가 의문시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쉬운 예로 3단 논법에서 이 문제를 살필 수 있다.
사람은 죽는다. [ 대전제]
철수는 사람이다. [소전제]
∴ 철수는 죽는다. [ 결론]
위와 같은 추론식이 3단논법에 의한 추론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위 추론에서 전제가 참이라면, 위 3단논법을 통해 얻는 결론은 참이라고 말한다.
즉 3단논법과 같은 연역추론식은 전제명제들을 참이라고 할 때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참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론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처음, 전제 명제가 참이라는 의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달려 있다.
○ 일반적으로 하나의 명제가 '참이다'라는 말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사람은 죽는다 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그 명제를 구성한 사람, 죽는다 라는 개념이 가리키는 현실 내용이 있고
그 현실 내용들의 관계가, 명제에서 표현된 관계와 부합하는 경우 참이다.
즉 사람과 죽는다는 사실들이 서로간에 명제가 가리키는 내용처럼 관련되어 있음이
현실에서 확인될 때 참이라고 하게 된다.
결국 하나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보통 그런 상태를 의미한다.
만일 이처럼 현실내용과 관련시키지 않는다면,
참거짓을 판단할 기준을 찾기 힘들다.
명제가 명제 자체로 형식을 못 갖추거나,
그 내부자체에서 서로 모순임이 명백하면 거짓이라고 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명제는 모두 명제의 형식을 갖는한,
독립적으로 명제로서는 성립되기 때문에 이것은 큰 논의점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명백히 서로 내부적으로 개념간에 모순이 발생해도,
예를 들어 사각형은 둥글다라고 말해도,
그것이 모순이라는 사실도 사실은 그 명제 자체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그 각각의 개념이 가리키는 현실내용에서
그것이 모순관계임이 밝혀지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명백히 자체 모순인듯한 내용을 진술하는 많은 명제가
사실은 개념상으로는 자체 모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 관계가 현실에서는 성립함을 밝히기 위해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렇게 단순히 판단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위 명제 사각형은 둥글다..라는 명제도
정면에서 사각형으로 보이는 저 물체도,,위치를 달리 해서 보면
원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기술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명제가 참이라는 의미는
우선 그 명제를 구성하는 각 개념들이 가리키는 현실내용이 있고,
다시 그 개념들의 현실 내용들의 관계가,
명제에서 개념들의 상호관계를 기술한 내용처럼 되어 있다..=> 라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명제가 참이다는 표현을 통해 이해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 그래서, '사람은 죽는다 '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사실은 다음을 의미한다.
우선 a,b,c,d,e,f,,,등이 있다. 그리고 a는 사람이고, b,c,d,e,f ,.... 등은 모두 사람이다.
그런데 그 a,b,c,d,e,f,,,,,등을 모두 확인해보니 죽는다.
그래서 '사람은 죽는다 '라는 명제는 참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다.
○ 그러나 위와 같은 연역추론식에서 그와 같이 전제 명제의 참의 의미를 이해하면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선 그렇게 전제명제들의 참의 의미를 이해하면,
그 연역추론은 사실은 전제명제의 참을 확립할 때부터
이미 결론의 참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하므로
사실상 그런 추론은 행할 필요가 없는 추론이라는 문제를 일으킨다.
일찍이 밀은 삼단논법에서 결론의 참을 먼저 확립해야 전제의 참이 확립되는 선결문제의 오류가 들어 있다고 이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문제점을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위와 같은 연역 추론을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제명제들이 참이라는 사실을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3단 논법에서는
전제의 참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추론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결론이 참이라는 사실이 이미 그 과정에 미리 포함되게 된다.
따라서 전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확립한 이는
전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이미 결론이 참이라는 사실을 먼저 확립해야 하고, 또 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결론이 참이라는 사실을 얻기 위해
위와 같은 추론을 별도로 행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만일 결론의 참을 미리 모른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전제가 참이라는 사실도 먼저 확립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론의 참을 확립하는 것은
전제의 참을 확립하는 데 있어 먼저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가 된다.
■ 위에서 예를 든 삼단논법의 사례를 가지고 이 문제를 이해해보자.
□ 먼저 전제명제들
즉 '사람은 죽는다'..'철수는 사람이다'..라는 전제가 참이라는 것을 확립한다고 하자.
이렇게 전제 내용이 참이라는 것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철수가 죽는다'-라는 사실이 참이라는 사실도 확립했어야 한다.
철수가 사람인데
철수가 죽는다는 사실을 먼저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것도 확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철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확립한 경우는
그 과정에서 이미 얻고자 하는 결론내용도 얻어 놓은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그런 결론을 얻기 위한 3단논법과 같은 추론식은
사실 행할 필요가 없는 추론이거나, 무의미한 추론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저런 추론식을 이용할 때는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철수는 죽는가 안 죽는가가 참인지 거짓인지가 문제된 상황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일정한 전제를 바탕으로, 이런 결론의 참을 끌어내거나 그 참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위 추론식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다.
□ 그런데 만일 결론 내용 - 철수는 죽는다 -는 것이 참이라는 것을 확립하지 못한 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처음 제시되는 전제단계에서부터
그 전제들이 참이라는 사실도 같이 확립하지 못하게 된다. ( 검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철수가 죽는지 않는지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위 전제처럼 (모든) 사람은 죽는다..철수는 사람이다..와 같은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도 확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철수 하나에 대해서 모르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를 참이라고 확립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런 이유로 만일 철수만은 빼고 ( 나머지 모든 ) 사람은 죽는다.. 철수는 사람이다..라는 사실만 참이라고 전제로 확립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전제만 주어진 상태에서는 '철수는 죽는다'와 같은 결론을 필연적으로 이끌어내지도 못하게 된다.
나머지 모든 사람이 죽는다 해도,,그것이 철수에게도 효력을 미치는가 안 미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즉 연역추론식이 추구하는 필연적인 추론이 위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게 된다.
★ 이는 결론의 참을 미리 모른 상태에서 위와 같은 의미로 행하는 추론은 사실상 귀납추론식의 방식으로 추리를 한 것과 같다는 의미다.
즉 철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죽는 것을 확인했다. -> 그러니 철수에게도 이런 사실이 해당될 것이다.
라고 '귀납적으로' 추리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결론의 참이라는 사실을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식 자체를 통해 얻게 되는 연역추론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다.
결국 3단논법에서 전제의 참의 문제를 위와 같이 이해하면
3단논법과 같은 연역추론식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된다.
우선 결론이 이미 참이라는 것을 아는 이의 경우는, 행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추론을 행한 것이 된다.
만일 결론이 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전제가 참이라는 것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전제를 가지고 추론을 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만일 결론이 참이라는 것을 모르고, 결론의 내용만 제외하고 전제의 나머지 내용이 참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라면,
필연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불완전한 전제를 구비한 상태에서, 사실상 귀납적 추리추론을 행한 것으로 된다.
○ 3단논법과 같은 연역추론식에서
전제명제의 참의 의미를 앞과 같이 이해하면 위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연역추론식은 추론식으로서 완전히 기능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제의 참의 의미를 앞과 같이 일반적의미로 - 즉 현실내용과 관련하여 전제명제의 참의 의미를 음미하는 그런 경우로 - 이해했을 경우에만 나타나는 문제다.
그러나 연역추론식은 위와 같은 추론 이외에도 앞과 같이 구체적인 현실과 관련되지는 않고,
단순히 형식적인 의미만 갖는 명제를 통해 다음과 같은 추론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상 연역추론식이 기능을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다.
예를 들어보자.
도깨비는 뿔이 3개 있다. [대전제]
마틸다는 도깨비다. [소전제]
∴ 마틸다는 뿔이 3개 있다. [결론]
우리는 위와 같은 추론에서 전제와 결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전제명제가 참'이라면' 결론도 참이다.
우리는 이런 추론에서
전제명제의 참을 앞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이해할 수는 없다.
현실에서 도깨비도 확인할 수 없고
뿔이 3개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위 추론식은 추론으로서 타당하다.
그것은 사실 다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만일-- 전제명제와 같은 사실을 참이라고 한다면,
그 바탕에서 결론도 참이다..
□ 또는 만일 전제명제와 같은 내용을 참이라고 약속한다면,
그러그러한 결론은 참이다.
즉 위 형식적인 3단논법의추론은
전제명제가 참이라고 가정하거나, 아니면 그런 사실을 참이라고 약속하거나,
또는 그러그러한 사실을 참이라고 정의하거나 한 바탕에서는
추론을 통해서
전제명제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결론과 같은 새로운 명제를 참이라고 추론해 이끌어 내거나
그런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결론은 그런 의미에서 참이 된다.
즉 전제가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말도 안되는 ) 결론이 참이라는 의미는
위와 같은 전제에서
마틸다는 뿔이 없다 든지
마틸다는 뿔이 4개다 와 같은 결론은 끌어 낼 수 없는 데 반해,
마틸다는 뿔이 3개다 라는 명제는 끌어 낼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마틸다는 뿔이 없다'는 명제는 위 전제를 참이라고 할 때는 거짓이 되고,
'마틸다는 뿔이 3개다'는 명제는 참이라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형식적인 추론을 하는 경우 결론이 참이라는 것은 다시 전제가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만 유효하다.
따라서 다시 이런 추론에서도 그 결론의 참의 의미는 다시 전제명제의 참의 의미에 의존하게 된다.
이 때 이런 추론에서 전제가 참이라는 것은 과연 그 명제가 어떤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는가가 다시 문제된다.
□ 사실상 위와 같은 형식적 추론은
앞에서 행한 실질적 추론에서 현실 내용과 대조하여 그 명제의 참을 판단할 때 갖는 '참'의 의미를 준용한 것이다.
그리고 --- 일정한 사실을 마치 그렇게 참이라고 본다면,,,-- 하고 추론을 시작한 것 뿐이다.
그리고 형식적 추론에서는 그 외의 의미는 갖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적 추론에서 전제가 참이라는 의미는 사실 공허하다.
단지 참이라고 가정하자..약속하자..정의하자..받아들이자,,
그런다면 이후 그런 바탕에서 이런 새로운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런 결론을 그렇게 끌어 낼 수 있다는 필연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바로 연역추론식의 의미다.
그래서 연역추론식은 사실 매우 새로운 개념상의 형식적 논리게임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게 된다.
그 가장 기초에는 어떤 어떤 내용을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참이라고 가정한다면,
또는 약속한다면, 정의한다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런다면 그 이후 이런 이런 내용들이 필연적으로 참이라고 연역되어 얻어진다...라는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추론에서 전제의 참을 다시 현실 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하려고 하면,
다시 앞과 같은 추론상의 문제점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사실상 같은 표현 같은 형식으로 추론을 하더라도,
연역추론식은 실질적으로 의미가 다른 두 경우가 있게 된다.
그리고 연역추론식이 추론식으로서 의미를 갖는 경우는
바로 뒤의 경우,
즉 전제를 그저 맹목적으로 참이라고 가정한다면,,,하고 추론을 시작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그럴 때만 추론식을 통해 추론을 하는 필요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추론은 전제명제를 관계지어 전제명제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을 결론으로 끌어내는 의미도 갖게 된다.
또 그런 경우에만 결론이 전제로부터 필연적으로 끌어내지게 된다는 필연성도 확보된다.
반대로 전제명제를 현실 내용과 관련지어 그 참을 이해할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의미한다.
행할 필요가 없는 추론을 행한 경우 아니면,
전제의 참이 먼저 확보되지 않아 사실상 행할 수 없는 추론을 행한 경우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런 불완전한 전제로부터는 그런 결론이 필연적으로 끌어내지지 않는데도 그런 결론을 귀납적으로 끌어낸 귀납적 추리의 의미를 갖고 제시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한 주의 복권의 당첨번호는 하나다.
수백만개의 조합의 숫자를 나열하고 이것이 다 당첨이 아닌 것을 확인했다고 하여
나머지 1장이 당첨인가 아닌가를 확인시키는 힘을 갖지 못한다.
그것이 귀납추리의 문제점이다.
연역추론은 그렇지 않다..그 미세한 차이가 여기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형식적 연역 추론에서
전제가 참이라는 것은,, 처음 우리가 이해한 그런 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 명제의 구성 내용으로서
각 개념이 현실에서도 그에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 참된 개념이고,
다시 명제에서 그 개념과 개념들의 관계를 제시한 것처럼,
현실 내용들에서도 그런 관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참이라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명제가 참이라는 의미는 원칙적으로는 위와 같은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연역추론에서 각 명제가 참이라는 의미는 원칙적으로 위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주어 + 서술어를 결합시켜 만든 명제를
단지 위와 같은 의미와 비슷하게, 참이라고 받아들인다면, 하고 추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로 인해 다음과 같은 결론도 참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관계가 성립된다.
이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연역추론에서의 명제가 참이라는 의미는
공허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가장 기초가 되는 전제를 그저 그렇다고 받아들이자.
그렇게 약속하자. 그렇다고 정의하자.
그저 무조건 참이라고 가정하자.
그런 최종 상태를 만나게 된다.
그 바탕에서 결론도 그와 같이 참이다. 라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연역추론이 갖는 안타까운 면이지만,
그러나 반대로 연역추론이 일정한 내용을 이렇게 처음 행하는 약속이나 정의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무수한 논리 게임이 가능해진다.
즉 현실 내용과는 ( 약간은 관련되지만) , 사실상 유리된 상태로 새로운 내용들을 무수히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수많은 논리게임이나, 형이상학적 주장이나, 수학적 결론이나 컴퓨터 게임도 그와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공리나 약속 정의를 바탕으로 한 상태에서 무수한 새 내용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게임에서는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주먹을 이기고 그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가위바위보 게임은 계속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가위를 이기고 라고 정의하면 재미없는 풀리지 않는 모순 패러독스 게임이 만들어진다.
이 전제를 기초로 하면 이 결론이 저 전제를 기초로 하면 다른 결론이 나타나고 혼동을 일으킨다.
한 마디로 재미없고 이상한 게임이 된다.
다만 그것 뿐이다.
왜냐하면 연역추론 게임은 처음부터, 현실과는 떨어져서 별개의 전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현실문제라기 보다는 전제에서 참이라고 제시한 내용들로 인해 발생한 일종의 게임의 오류에 불과한 것이다.
○ 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연역추론은 그 자체로 전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와 같이 갇힌 닫혀진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필연적인 추론을 무수히 행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한마디로 지적 게임에 불과한 것이 되기 쉽다.
한마디로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보다 의미를 두는 현실과 그것이 관련되는 내용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여전히 지적 게임의 영역에 남게 된다.
=> 최종적으로 논리학의 추론이 이런 지적게임이나 유희로 끝나지 않고
현실 경험세계에서도 의미를 갖는 논리나 추론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가.
각 개념과 명제가 어떻게 현실 내용과 관련되어 참을 확립하게 되는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어떤 추론이 가능한가.
필연적으로 가능한 추론은 무엇이고,
단지 개연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추리되는 귀납적 추리는 어떻게 가능한가,
등을 하나하나 검토해 나가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앞에서 살핀 참된 개념에서 참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차원의 문제가 된다.
하나의 개념에서는 --> 그것이 참되다는 것은 현실내용과 어떻게 개념이 관련된 상태를 의미하는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다시 하나의 명제가 참이라는 것은 --->
각 현실내용이 서로 어떤 관계로 되어 있을 때,
S는 p이다 라는 식의 명제가 참이 되는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그리고 그렇게 참의 의미를 확립하는 가운데 추론을 행할 때만,
그 추론이 현실적 진리와 깊은 관련을 갖는 추론이 된다.
그것은 또 그런 상태에서 추론을 행해야만
단순한 지적유희 지적 게임 놀이로서의 추론으로 그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반대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가
논리학이 현실의 진리 문제와 관련이 되는 다리, 또는 교두보를 확립하는 문제의 성격을 갖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개념이 어떤 상태가 되야 그 개념이 참된 개념이 되는 것인가의 문제를 이어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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