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Lab value
○ 위 제목을 붙이고 글을 쓰려한 내용은 사실 지금 부터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미리 필요한 내용을 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어쩔 수 없이 페이지를 새로 해서 이어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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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현실에서
감각을 해서 일정한 내용을 얻고
이에 대해 생각하고,
그리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데
이런 가운데
진리가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
학문도 그런 이유에서 발달된 것이고
논리는 그 기초에 놓인다.
다만 논리나 논리학은 그 가장 기초에 놓여 있고
직접 구체적인 내용을 주지 않기에
대부분 피곤한 논의로 보게 된다.
논리학은 개념을 다시 가장 기초로 놓는다.
그래서 개념을 논의하게 되는데
그런 가운데이상한 제목을 붙인 이유는
조금이라도덜 딱딱하게 하자는 목적도 있지만,
또 사실관련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논리학에서 다루는 주 내용은 개념인데
그 개념이 여러 차원의 내용과 관련이 됨을 보았다.
'사람' 이라고 단어를 쓸 때 이 단어는 가리키는 마음 속 생각 '개념내용- 사람'과 관련된다.
그리고 또 눈을 떠 보는 사람모습 '감각내용-사람'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한 주체가 무언가를 상대해서 얻는 현상적 내용이라는 점이 공통된다.
기억 저장 재생이 되던 않던, 남에게 전해 줄 수 있던 없던, 한 주체는 일단 자신 혼자서라도
그 내용을 현실적으로 얻어 확인하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현상적 내용과 관련하여 또 다른 내용으로서
실재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의 의문도 일어난다.
그래서 실재내용도 살폈다.
이런 가운데 이 모두를 하나의 언어표현으로 모두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언어-사람'은 한글이다.
'개념내용 사람'은 생물이다.
'감각내용-사람'이저기 걸어간다.
'실재내용으로서 사람'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하기 곤란하다.
이렇게 구분해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모두 사람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또 그렇게 가리키며 사용한다.
언어는개념적 차원과 감각내용적 차원이 있다.
그런데이들이 다른 개념과 감각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자기 자신보다는 또 다른 내용을 가리키는 데 사용될 때
그 이유로 그것이감각내용이던 개념내용이던 그것을 언어라고
따로 부르게 되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도 소리다. 글자도 그림이다..이들은 감각내용이다.
그리고 말(소리) 글자(그림)에서 곧바로 얻어 갖는 개념도 개념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언가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언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내용이 위와 같이 다양한 차원의 내용들이다.
그래서 혼동도 일으킨다.
그렇지만,그래서 언어를 사용하기편하게 된다는점도 있다.
논리학이 언어와 개념을 통해 무언가를 밝히거나, 논증하거나,비판 검증할때도
위 사정은같다.
그런데 논리학은
이런 각 차원의 무언가의 내용에 대해 옳은 내용을 찾고 입증하고
비판하고 검증하는데 사용하고자 논리학을 의지한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내용이 중요한가를 따져야 하고,
논리학도 주로 그런 목적에 이바지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앞에 쓴 글이다.
그리고 어떤 차원의 어떤 내용이논리학이 초점으로써
중요한가를 살피기 위해 먼저서로 다른 차원의 내용을 대강 먼저 살피는 것이 필요하므로 앞에서살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가..
현실 사람은 대부분 현상적 내용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감각해서 얻어 갖는 내용
그리고 이에 대한 생각, 느낌들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가짜고 일시적인 것이고,
그것의 바탕이 되는 진짜 실재내용이 중요하다.
이런 입장에서는 실재 내용에 중점을 두고,
실재내용을 찾고 얻고 그런 목적에 논리학도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지금 중론 논의와 관련하여
논리학의 기초를 살피고 있는데,
결국 이런 논리학의 기본에 대해서내용이 제시되는 이유도
사실은 이런 기초에 있다.
또 논리학에 혼동 발생과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바로 위와 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일단 중론의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내용
그리고 진리를 밝히는 논리학이 최종적으로 의미를 두어야 하는 내용도
가짜이고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그리고 각 주체와관계할 때마다 내용이 다른 현상적 내용이
아니고 그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내용- 실재내용- 이어야 마땅할 것 같다.
그것은 중론을 논의한 용수보살 개인의 배경을 살펴봐도 그렇고
일반적인 개인을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모두
현실에서 얻는 감각이나 개념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되풀이 반복하면서 깊게 따져보면,
이것은 진짜가 아니다..
진리를 따지더라도 진짜 진리가 아니다.
단지 임시적인 내용이다.
그러니, 결국 진짜가 무엇인가..실재하는 내용이 무엇인가가 진리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논리학도 그에 치중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원래 사회문제나 각 개인의 범죄 악을 연구주제로 삼는 입장에서도
결국 같은 의문에 들어가게 된다.
범죄 결과를 발생시키는원인은 어떤 사람의 행위, 어떤 도구등으로 보다가.
다시 그 원인을 찾다보면,
개개인의 마음의 내용으로 원인을 찾게 되고,
다시 이들의 진짜 내용을 찾다 보면,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현상에서의 문제는
나에 대한 생각과 그 나를 기준으로 현상내 다른 내용을 모두
살펴본다는 점에 있다.
나 자신의 생명 신체가중요하고
다시 나의 재물이 중요하고,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중요하다..
물론 현상적으로 얻는 내용으로서 나, 나의 것, 재물, 다른 이,,등이 주된 관심 대상이다.
진리도 그런 차원에서 논의되고 추구된다.
논리학도 또 마찬가지다.
그런데 앞과 같은 반성을 통해,
진짜나의 정체, 진짜 나의 것의 정체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긴다.
또 그것이 정말 정말 진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 이후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세속에서는,
나를 기준으로 그 나의 생명 신체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하여
일반 진리를 조사하고 관찰하게 된다.
진리를 찾는다
논리학을 공부한다.
논리를 구사해서 진리를 밝히고 검증하고
또 오류 거짓 허위 등에 대해 비판하고 깨뜨린다는 행위도
그와 같은 기반에서 추구된다.
관찰과 자의식은그런 기준에서 시작된다..
● 그런데 그런 세속적 기반에서
나를 정하고 나의 것, 외부를 정하고
관찰하며자의식을갖는 것은
정말 진짜의 내용, 실재내용의 진리 차원에서
나와 나의 것,,의 문제를 생각할 때는
버려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추구로서 관찰 그리고 그 근본목적으로서 자신에 관련된 의식을 갖고추구하는 행위등은
버리고 금지되어야 할 내용이 된다.
● 개념과 논리학이 주로 이런 현상적 진리에 이바지하고
그에 사용되는 개념도 주로 여기에 이바지했다면,
그 오류를 깨닫고 그것이 중지되어야 한다.
관찰과 자의식의금지와 개념의 의미는 사실 이런 의미다.
>>> 사실 이후 이런 목적으로 또 다른 행위가 추구된다..
그러나 일단 시간을 넘겼으므로 to be continu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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