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오목 볼록 거울, 렌즈, 물 속에서의 물체의 모습, 허공에 성채가 떠 보이는 신기루
작은 바늘 구멍 사진기 등을 통해
빛과 관련해 여러 현상을 살펴보다보면,
신기한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오목한 것인가, 무엇이 볼록한 것인가의 개념부터 혼동을 일으키고
다시 허상, 실상의 관념부터 헷갈려 하는
LAB 님을 기초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고,,,
우선
오목거울은 자신의 눈을 기초로 해서 이런 형태의 거울이다..이런형태,,그것이 오목한 형태지,,
이렇게 오목-볼록을 헷갈려 하는 분은 서로 반대되는 내용에서 헷갈림 현상을 일으키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예방책은 하나만 정확히 인식하고 외우는 것이다.
오목은 이것이다.. ( 볼록은 그 반대...)
오목거울로 어떤 물체를 놓고 보면
하나의 모습[상]이 거울 앞쪽에 그 물체가 거꾸서 선 듯한 작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볼록 거울은 이 반대다..
볼록거울로 물체를 놓고 보면 그 모습[상]은 거울 안쪽에 생긴다.
이 때 오목거울과 볼록거울을 통해 나타나는 두 모습 가운데
볼록거울로 나타나는 상은 허상이라고 한다.
LAB님의 의문은 오목거울이나 볼록거울이나 둘 다 그 모습을 보게 한 물체가 아닌 데
왜 하나는 실상이라고 하고
또 하나는 허상이라고 하는가의 의문인 것 같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는 둘 다 가짜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실상, 허상의 구별기준은
빛을 그 방향대로 죽 따라 자신이 간다고 할 때
그 모습을 지나쳐 가는가 안가는가의 문제이다..
볼록거울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고
오목거울은그렇다는 의미에서
이를 허상(허초점) 실상(실초점)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비록 이처럼 허상 실상을 구분하지만,
그러나 그 모습이 보인 곳에 물체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 그렇게 믿을 이는 가끔 있지만, )
그래서 사실 진짜 물체의 개념으로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무엇이 진짜인가를 찾는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위에서 이들 실상, 허상을 나타나게 한
물체가 있는 곳을 진짜 물체라고 보게 된다.
그 의미는 그 부분에서 손을 뻗친다면,
무언가 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앞의 실상은 비록 초점은 그자리에서 맺혀지고
빛도 그 위치를 지나가는 것은 맞지만,
그러나 그 위치에 손을 내저으면
그 물체에 해당한 촉감을 얻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는 또 가짜다.
그러나 이제 물체가 있는 곳은 시각도 얻고 촉감도 얻어지므로 이제는 진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엄밀하게 생각을 기울이면
이 역시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된다.
여기에는 복잡한 실험도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관찰자 2인과 관찰대상 물체 그리고 관찰자의 눈을 가리고 열 숟가락 같은 도구만 있으면 된다.
이제 이 상황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게 하고 물체가 보이는가 묻고
눈을 열게 하고 물체가 보이게 하는가를 묻고
그 대답을 듣는다.
안 보인다고도 하고
보인다고도 하고
대답을 하는데
자신이 이 상황에서 생각하면
그 사람의 대답의 변화에 따라서
정말 외부의 물체가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변화가 있다면 어디에서 일어난 변화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보는 것도 같고 만지는 것도 같다..
손을 대게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도 같은 방식으로 병행할 수 있다.
손을 댈 때는 있는 것이 손을 뗄 때 사라지는가 하고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안다.
결국 자신이 관찰하는 이가 얻는 내용은 어느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내용인가
생각해보면,
그 사람 안에서만 일어나는 내용변화다.
즉 그 사람의 정신안의 마음속 내용물의 있고 없고 사라짐의 변화를 의미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것과 관계없이 계속 얻고 있다고 할 자신이 본 외부물체의 사정은 어떠한가..
그 관찰자의 마음안의 내용과는 다른 어떤 내용물인가,,,
그렇지 않고 사정이 같다는 점이다.
결국 내가 본 내용물도 -- 앞의 그 관찰자의 마음안에서의 변화와 -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보고 만지는 것들의 의미를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과연 진짜인가..의 연구는 그래서 계속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가 마음으로 본 이 내용물 밖에 진짜가 따로 있을 것이다는 추리가 필요하게 된다.
이 추리를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을 진짜[실재내용]라고 하고
그 진짜를 찾아야 하는데,
이제 지금 보고 있는 내용을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가...
다시 제 3자를 놓고 생각하면 분명 제 3자가 보고 안 보는 내용과는 달리
일정하게 유지되는 외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을 진짜[실재내용]이라고 할 수 없는 사정은
그것은 사실 내가 본 내 마음안의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이어서 그렇게 보는 것이고,
내가 관찰하는 제 3자가 얻는 내용물은 -- 직접 보지 못하고 - 말로써 보고를 받은 것 뿐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가운데 진짜를 그대로 얻어 갖는 이는 누구도 없다.
///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모두 이 기초 위에서 성립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체의 존재 세계가 다 그렇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최초의 감각한 내용물들이 그런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놓고 생각해서 만들고 분할하고 묶는 관념들의 내용도 그렇다.
보이는 모습에는 분할이 되어 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묶여 있다고 하기도 그런데
나는 나누기도 하고 묶기도 하고 각기 관념을 성립시킨다.
이 관념은 색이나 소리 ,,, 등과는 또 다른 정신안의 내용물인데
이것을 가지고
일정부분을 책상이라 묶기도 하고
다시 그 책상을 책상 다리 책상 윗면 책상 서랍 등으로 나누기도 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
여기까지가 과학이 다루는 분야라면
가치는 이것을 다시 놓고 다룬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또 다른 허상이라는 의미다,,
분명히 대하는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고 앞에서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이 진짜가 아닌 모습을 놓고
관념으로 분할도 하고 종합도 하고 관계도 살피고 ,, 인과도 따지면서
이것의 좋고 나쁨까지 만들어 갖는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이는
이 가짜의 시각, 촉각, 미각 등을 통해서
무언가 섭취하면서 좋다고 여기고
또 그로 인해 무언가가 정말 섭취되어
영양도 얻고 생활도 하는데
이 가운데 표면으로 감각해 느끼는 것들은 사실 다 사정이 같다.
맛있다. 배부르다, 힘이난다 등이 그런 성격이다.
그래서 이처럼 맛있게 만들고 배부르게도 힘이 나게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게도 만드는
진짜 실재 내용 자체는 얻지는 못한다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 표면상의 나의 모습이나 외부의 모습이나
모두 표면으로 얻는 가짜 모습[허상]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앞에서 좋다고 여길 때 그 좋음이 정말 진짜인가의 문제는,
그 좋음을 느끼게 한 것을 계속 뚫고 대하면
그 좋음의 내용을 찾을 수 있는가인데
그렇지 않다는 데 어려움이 있게 된다.
당장 두개 세개 네개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이면 좋음은 무감각함에서 나쁨으로
쉽게 바뀐다.
그러나 이 아이스크림이라는 허상이 없이 또 그것이 얻어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좋음 나쁨이야 상상으로도 얻는다지만,
그러나 정말 영양을 섭취하고 생활하는 것까지도 그렇게
생각만으로 가능한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존이나 생활에 필요로 한 최소한의 부분과,
단지 좋음의 느낌을 얻는 부분 사이에서는
약간의 질적 차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많은 연구원이
이 부분을 나누어
최소한의 생존-의식주-등에 강조를 하다가,
그것을 넘는 부분은 단순한 즐거움의 문제로 넘겨 처리하는 것은
이런 질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초에 오목거울에서 본 허상과 실상의 구분-- 물체의 구분 -- 진짜 물체의 구분
이렇게 진짜의 의미를 차이를 두고 연구를 진행할 필요를 느끼듯
조금씩 질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
이렇게 보면 좋고 나쁨의 문제는
가장 허구적인 내용인데,
그러나 모든 것의 최종적 목적점이기도 하다..
물체가 되기를 원하거나,
물체의 물리적 양만을 많이 얻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들이 추구하고 추구하여 끝내 얻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가장 허구적이라고 할 좋은 느낌 나쁜 느낌 그런 것에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럼 그 반대를 최종적으로 원하는가.
물리적 상태와 양을 원하는가?
그래서 간단히 말해 물리적 양과 많이 접촉하고 감촉하는 상태 그 자체를 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런 상태에서 정작 그가 괴로워하고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면 ...
그래도 물리적 양과 많이 접촉하고 감촉하기에 그 상태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두어야 하는가?
어떤 물체에 고정적인 좋음이 있다고 집착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병에 걸린 이들을 치유하는 방안은
사실 그가 질릴 때까지 그것을 제공해 주는 것도 한 방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작 그가 집착하는 그 물리적 양과 크기에는
그가 원하는 실질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스스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사람들이
사탕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자꾸 공장 안에서 하나 둘 사탕을 집어 먹게 되는 데,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하나 둘 집어 먹는 것을 일일히 감시하기는 곤란한데
또 그렇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사탕공장의 수익은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사장이이런 경우 고안하게 되는 첫 방안은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는 이에게
그 공장안의 사탕을 처음 아주 질릴 때까지 먹게 하는 방안을사용한다고 한다.
쉬엄 쉬엄 조금 조금씩 먹다보면 한 없이 먹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말 너무 질려서 보기만 해도 역겹게 느껴지면,
그러나 더는 먹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결국 외부의 물질에 좋음 자체가 들어 있다고 고집을 피우는 이들에게는
그 외부의 물질을 모두 안겨주어
스스로 그것에는 그런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MUN 님등이 말하는 내용은
원하는 내용이 이미 마음안에 다 들어와 있으니
원하는 대로 다 꺼내 가지라고 하는 것도
이와 일면비슷한 처방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본래 좋음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체에 따라 대상에 따라, 상황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결국 좋고 나쁨이란, 대상과 주체가 서로 화합하여 주체의 마음안에 모습(감각)을 맺히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다시 화합하여 허상으로서 나타나는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는 가운데 이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상대가 기분좋은 말로 건네면 맛이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고 책상에 딱 내려 놓고 빨리 마시고 나가 이렇게 말하면
갑자기,,독배를 마시는 기분이 되는 것은
그런 이치가 아닌가 싶다..
어제 내게 그런 식으로 대한 LAB님을 오늘 ...손을 좀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LITTLE 님이 고졸 밸류 MUN님이 쓴 고말 밸류를 언급하면서
일을 해 화폐수입을 얻으면 이를 고졸 밸류 고말밸류로 바꿔야 하는가..
아니면
반대로 고말밸류를 얻으면 화폐로 바꾸어 보관해야 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
이 문제도 앞과 같은 문제다..
사실 이 문제가 현실에서 잘 묻히는 것은 계속 돌고 돌기 때문이다.
물건과 식량을 보내고 종이돈을 받는다..종이돈은 은행에 보관하고 숫자만 기록한 종이를 받는다.
그러나 이 관계에서 최종적으로 종이에 적힌 수자에 최면이 걸려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다시 화폐로도 또 원하면 물건과 식량으로도 바뀌며
계속 돌고 돌기 때문이다.
그런 입장이라면 사실 위 문제도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 만큼 돌고 돌기 때문이다.
돈은 안 오더라도 화장실의 문이 열려 긴급한 고통을 해소하기도 하고,,
또 물건은 안 들어오더라도,, 서비스맨의 친절을 받기도 하고,,
이처럼 돌기도 하고,,
반대로 그 반대의 내용이 서로 오가기도 한다..
용변이 마려운데, 화장실문을 아무도 안 열어줘 길가에서 용변을 보다가 잡히어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돈을 주고 물건을 가져 왔는데, 곧이어 어떤 이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돈의 입출입만을 보면 회계장부에 숫자를 기재하게 되지만,
이 전과정을 지겨보면 역시 서로 여러 형태로 가치가 그 모습을 변환해가면서
오가는 측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각각의 가치가 시기 상황따라 다르다는 것도 사정이 같다.
배추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만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그래서 봉이 김선달은 들어갈 때 돈을 주고 화장실을 이용하지만,
또 들어 간 다음에는 나오지 않아서 그 몇 백배나 되는 돈을 받고 나온다고도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가치의 변화 측면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다가 돌다가 어느 순간에 멈춰지면 이 가운데 무엇을 잡는 것이 유리할 것인가..
또 이는 달리 물을 수도 있다..
돌고 도는데 최종적으로 무엇을 얻고 거기에 계속 머물기 위해
그렇게 계속 돌고 돌며 더 크게 원을 크게 돌리고 돌리고자 하는가..
여기에 그 질문의 핵심과 답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허상과 실상, 가짜와 진짜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숫자와 종이 재산,,지위 등을 생각하다가
정말 진짜를 찾게 되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이유다.
그리고 세상의 진짜와 허상 문제를 놓고 생각하다 보면,
이런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많이 간절히 원하거나 또 극심하게 두려워하는 내용은 대부분 허상인 경우가 많다..
***
///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도로시라는 소녀가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와 여행을 떠나는데
그들은 무언가 찾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들이 찾아 낸 최종 목적지에는 또 다른 허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들이 믿었던 내용들은 단지 용기없는 겁장이가 확성기를 틀어댄 것에 불과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화속 이야기와 같은 허상이 왜 만들어지는가 하고
그 근본을 찾고 찾다보면
결국 다시 물리학적인 가짜 - 진짜
그리고 심리적인 좋음 - 나쁨의 문제로 돌아가게 된다.
개개인들이 갖는 많은 생각 믿음의 내용은 사실은
이 토대 위에서 허구적으로 만들어지고
추구되는 데 그 모습이 동화속 이야기와 사실은 같다.
그리고 결국 그 허상속에서 살아가는 이는
자신의 허구적인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신과 같은 허상을 갖는 이를 모으고
같이 이 허상 속에서 계속 헤매 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빛에 손그림자 놀이를 하다보면
원래 그 실재의 크기는 아주 적고 모양도 없는데
그림자는 아주 그럴 듯하게 모습을 크게 갖추어 나타난다.
아이들의 오락이나 동화 속에는
이처럼 허상과 진짜와 관련해
어른도 함께 배워야 할 교훈이 들어 있는데
그러나 정작 이런 오락이나 동화로부터
교훈을 반대로 잘못 취해 나갈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 허상으로 즐거워하니 허상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계속 이렇게 허상을 만들어 즐겁게 하자..
이런 측면으로 교훈을 얻어 나가려고 하는 경우다.
어떻게 보면 그럴 듯도 하고 설득력도 있지만,
그러나 결국은 부족한 점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허상은 허상이고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허상의 그림자는 결국
원래 원한 실질 내용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진짜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앞에서 오목거울의 허상, 볼록 거울 실상 - 거울의 실상을 만들게 한 물체----그리고 실재하는 물체
이렇게 진짜 가짜를 추구해 나간 기본 동기는
앞의 허상들이 뒤의 내용들보다 무언가 결여하고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진리의 토대 위에서 건립된 것들만이
오래 오래 진정 우리가 원하는 내용들을 줄 수 있다.
나머지는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것이어서
상황이 맞으면 일시적으로 좋음을 주고
상황이 맞지 않으면 또 허물어지고 마는 내용들이다.
그래서 물거품과 같고 꿈과 같다고 다들 말하게 된다.
문제는 물거품과 꿈과 같은데
이것을 진짜라고 믿고 강하게 집착하는 이들이
그 집착으로
원래 물거품과 꿈들이 줄 수 있는 좋음을 잘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좋음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역설적 상황이다.
그 좋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좋음을 계속 얻고
그 좋음이 너무 좋아 집착하면 할 수록 그 좋음을 얻지 못하고 일시적 좋음 뒤에 긴 나쁨 속에
헤매게 된다는 사정이 바로 그 역설적 상황을 말해준다.
따라서 늘 이런 과학지식을 대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문제는
이 과학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얻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우선 바람직한 목표의 하나는
액체 기체와 같은 물질 상태로 환원되어
일체의 문제에서
감각도 인식도 느낌도 일으키지 않아
일체 좋고 나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남아
평온?하다고 할 상태로 환원되어 머무르게 되는 것이 그 하나다..
좋음도 없겠지만 나쁨도 없을 것이고 번뇌나 고통이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망치로 부셔서 아프다는 벽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듯,,
얼마나 세상의 변화에 무관하게 평안?한가...
그러나 그것이 실현곤란해서 만일 다른 상태에서 목적상태를 찾는다면,
또 하나 바람직한 목표상태의 하나는
오히려 이 물거품 꿈과 같은 이 가상의 현실을
자신도 즐겁고 남도 즐겁게
선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앞의 첫 과제는대부분 수행자가 원하는 내용이지만, 그것은 사실 실현곤란하다.
우리의 정신이 우리가 감각으로 대하는 뇌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런 뇌의 모습을 보게 하는 원 실재내용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이
우선 있다.
그래서 신체(뇌)가 부서진다고 원래의 정신이 부서진다고 속단할 근거가 없다는 사정이 하나 있게 된다.
또 하나 원래 실재내용을 놓고 여기에서 우리가
고체, 액체, 기체, 에너지를파악되고 이들이 서로 돌고 돌아 변화한다고 생각하며,
원 재료 자체는 없어지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고 보듯
우리의 정신도 그런 상태라고 봐야 한다는부분부터
해결의 어려움에부딪히게 된다.
살다가 죽으면 끝이고, 또 끝이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이고 착각이라는 것이다.
손을 눈으로 가려서,앞의 물건이 안 보이게 되었다고
그 실재 역시 그렇게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없듯,
우리의 이해와는 달리,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물리적 상식처럼,
종이는 불로 태워서 없애면 다 끝이어야 하고
물도 끓여서 수증기로 날려 보내면 다 끝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나의 가상적인 허구적 믿음에 불과할 뿐,
원재료나 실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이들은 처음도 끝도 없다는 것인데,,
실재에서는 그것을 얻지 못해서 그렇다는 의미도 되고,
또 한편 우리가 대하는 현상 안에서도
아무리 가장 끝의 끝을 정한다 해도 다시 그 상태의 재료가 다음 순간에 변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
끝을 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아무리 큰 수를 생각해 정해도 다시 이에 1을 더하는 것이 수학에서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곱하기 2도 가능하겠지만,,사정을 변화시키는 내용은 아니므로,,생략하지만,
그것은 앞 시작도 같다는 것이다..같은 이야기다,, 빼기 1을 더하는 것이 수학에서 무한히 가능한 것과 사정이 같다..
그러나 이처럼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무한히 상속되고 돌고 변화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안한 이야기다..
시작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완전한 끝도 있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무한한 시간 공간대에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고통과 나쁨을 무한대로 키우는 방향에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대책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가짜 진짜에 대한 판단을 바꾸고
좋음과 나쁨의 내용과 정도에 대한 가치 평가의 기준을 전과 달리 하고
그래서 오늘부터 걸어다니고 말하고 생각하는 내용들의 스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과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면
진리를 말해준다..
그 진리는 어제 구경하고 온 도봉산의 바위산들이
중생대 때 처음 그 모습처럼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하튼 참고 올라가려니 땀이 나고 힘들다는 측면이다..
그래서 결국 아래에서만 적당히 놀다 왔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태양의 엄청난 에너지와, 엄청난 시간이 바탕이 되어
이뤄진 공간인데
그러나 본인과 LAB 둘은 자신이 잠깐 흘린 땀과 고통 즐거움을
이 모두를 능가하는 엄청난 힘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더 나아가,
그런 바탕에서 자신만을 중시하고 남의 내용은 모두 무시하려고 하고
이를 기초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LAB님이, 어제 내게 어떤 시련과 고통을 주었나,,
그리고 지금 그것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
사실 중생대 때 일어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땀을 흘리게 만든 태양의 광선이나 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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